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2024. 11. 29. 09:55문장 수집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말인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의 원문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 백번을 이긴다’가 아니라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다. ‘이긴다’는 쉽고 매력적인 말 대신에 ‘위태롭지 않다’는 어렵고 재미없는 용어를 손자가 쓴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살아온 날들이 많아지면서 선善과 악惡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잦아진다. 흑黑과 백白으로 편을 가르기보다는 회색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절하고 모양 빠지고, 그래서 비겁해지지만,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아가는 게 또한 산다는 것이다.

전쟁은, 규칙이 없다. 반칙이 칭찬받는 세계가 전쟁터다. 정정당당함은 스포츠의 현장에서나 찾을 일이다.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 가치가 있고, 그래서 패배마저 아름다운 건 스포츠에서나 기대할 일이다. 영화 속 악당들은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 눈에 모래를 던져 ‘비겁하게’ 공격한다. 우리의 영웅들은 위기에 빠지고 관객들은 분노하지만, 결국 영웅은 악을 응징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영화 속 이야기다. 역사는 비겁한 인간들이 만들어왔다.

장수(將)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모든 승전의 영광과 패전의 책임이 장수의 몫이다. 한심한 임금이 도움은커녕 방해만 해도, 휘하의 병사들이 훈련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오합지졸烏合之卒[3]이라 해도, 장수는 패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속이고, 때로는 때려서라도 장수가 이끌고 나가야 한다.

법제(法)는 모든 제도와 규칙의 총체다. 정부 조직부터 훈련 일정, 보고 체계, 사소한 업무처리 방식까지 모두 법이다. 그리고 이 법은 ‘지켜져야 한다’. 필요성이나 효율성은 그 다음이다.

이순신은 포로로 잡힌 왜병 가운데 아들을 죽인 자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심문에 나섰다. 다짜고짜 “누가 내 아들을 죽였느냐”라고 묻는 대신, “충청도에서 얼룩말을 탄 자와 싸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을 어찌 했느냐. 그 말을 찾으려 한다”라고 했다. 이에 한 왜병이 “그 말은 우리 장수에게 헌납했소”라고 했으니, 이는 곧 ‘당신 아들을 죽인 범인은 바로 나요’라는 자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략이란, ‘한 번 더 생각하기’의 다른 이름이다.

《삼략三略》 은 이런 충고를 덧붙인다. “우물이 마련되지 않았으면 장수는 목마르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막사가 설치되지 않았으면 장수는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식사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장수는 배고프다는 말도 하지 않는 법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시간 끌지 말고 거침없이 몰아붙여야 한다.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결정한 일에는 토달 것 없다. 뒤돌아볼 것도 없다. 즉각 실행에 옮겨 순식간에 끝내야 한다.

혁명은 개혁보다 쉽다고 한다. ‘개혁 피로증’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지지부진한 개혁은 저항 세력에 힘을 보태주고 결국 실패한다. 싸움이 옳든 그르든,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모름지기 싸움은 오래 끄는 게 아니다. 일단 싸움을 시작했다면, 머뭇거림은 죄악이다.

한산대첩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왜군에 “조선 수군과 싸우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순신은 단 3번의 출전으로 적으로 하여금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벌모를 달성한 것이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길 생각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벌모伐謀로 적의 계획을 분쇄하는 게 첫 단계다.

덤빌 생각도 못하게 하는 벌모나 동맹을 끊어 힘을 빼는 벌교가 고수들의 방법이라면, 직접 몸을 부딪히며 싸우는 벌병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보다 더 미련한 짓도 있다. 적이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데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고수는 적의 지갑 속 돈이 아니라 마음을 빼앗는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즉위 직후부터 신라 왕실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신라 경명왕景明王이 죽고 경애왕景哀王이 즉위했을 때는 조문 사절을 보내기도 했다. 견훤甄萱의 후백제군이 침략해오면 신라는 가장 먼저 왕건에게 구원병을 요청했고, 왕건은 꼬박꼬박 구원병을 보내줬다.

병법에서는 아군이 적군의 10배가 될 때는 포위한다(十則圍之 십즉위지). 5배가 되면 공격한다(五則攻之 오즉공지). 2배가 되면 적군을 나눈다(倍則分之 배즉분지). 수가 비슷하면 열심히 싸우되(敵則能戰之적즉능전지), 적이 더 많으면 도망가고(少則能逃之소즉능도지), 그게 아니라면 싸우지 말고 지키기만 한다(不若則能避之불약즉능피지). 수가 적으면서 싸워봤자 사로잡히는 게 고작이다(小敵之堅 大敵之擒也 소적지견 대적지금야).

‘전력 제곱의 법칙’ 또는 ‘전력의 승수 효과’라고 불리는 현대전의 개념이 있다. 란체스터Lanchester가 발견했다고 해서 ‘란체스터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원리는 이렇다. 아군 전투기 5대와 적군 전투기 3대가 공중전을 벌인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전력은 5:3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5:9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아군 전투기 5대와 적군 전투기 3대가 공중전을 벌여 적기 3대를 모두 격추시켰을 때, 아군 전투기는 2대가 아니라 3대나 4대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

손자는 싸움이 이미 벌어진 현장에서 도망가라고 하는 게 아니다. 아군의 전력과 적의 전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꼬리를 내리라는 뜻이다.

지휘권의 일원화가 싸움의 성패를 결정한다.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공명보다 낫다지만, 이는 여러 지혜를 모아 결정을 내리는 누군가가 있을 때를 말한다. 제각기 제 주장만 한다면 제갈공명 셋이 모여도 구두장이 하나를 못 당한다

임금이 군대에 근심거리가 되는 이유가 3가지 있는데(君之所以患於軍者三 군지소이환어군자삼), 첫째는 군대가 진격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면서 진격을 명령하고, 퇴각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면서 퇴각을 명령하는 경우다. 이를 군대의 코를 뀄다고 한다. 또 군대 사정을 모르면서 인사에 개입하거나 명령 계통을 어지럽히면 군사들이 헷갈린다. 이런 상태라면 적이 쳐들어오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군대가 어지러워 적에게 승리를 헌납했다고 한다.

이순신의 후임은 원균 元均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둘도 없는 악역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그도 수군 장수인지라 이순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정에 다시 왜군이 부산으로 건너온다는 첩보가 입수돼 출동 명령이 떨어졌지만, 원균도 배후의 왜군 수군을 걱정해 미적거렸다. 조선군의 도원수 권율은 한산도까지 직접 찾아와 군율을 세운다며 수군 총사령관 원균에게 곤장을 때리고 출정을 독촉했다. 부하들 앞에서 체면까지 구긴 원균은 마지못해 출정에 나섰고,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은 전멸당했다. 임금이 현장 사령관의 판단을 무시한 결과였다. 장수가 임금의 눈치만 본 결과였다.

제아무리 못난 임금도 임금이다. 장수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임금이다. 임금은 무시당한 기억을 결코 잊는 법이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준다.

선조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고스란히 갚아줬다. 속 좁은 임금이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대개 임금들은 이렇게 속이 좁다. 장수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란, 실패하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지만 성공했을 때는 그 자신의 공을 임금에게 돌려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산다. 빛나는 성취에도 늘 몸을 낮추는 자세가 절실하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고구려 원정이 끝난 직후, 공을 세운 열기裂起에게 그 자리에서 급찬級湌의 위품을 내렸다. 그리고 금성에 돌아와 문무왕을 알현하고 다시 청원했다. “열기는 천하의 용사입니다. 제가 우선 급찬 벼슬을 줬습니다만, 열기의 공로를 생각한다면 사찬沙湌 직급은 주셔야 합니다.”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급찬은 9등급, 사찬은 8등급이다. 현장에서 임시로 낮은 벼슬을 주며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 돌아와서는 임금의 재가를 얻어 높은 벼슬을 주는 김유신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아랫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망한다(下怨者 可亡也 하원자 가망야).”

식구도 몇 안 되는데 누구는 위원장 감투 내세워 목소리 내고, 누구는 장관이라고 고집 피우고, 누구는 박사 감투 내세워 잘난 척하면 집안 망한다. 명령은 하나의 통로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명령을 내릴 때는 ‘현장 판단’이 우선이다. 임금은 장수를 믿어야 한다.

황희는 어느 날 부인에게 “내 귀에서 파랑새 10마리가 나와서 날아가는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내가 죽을 모양이오”라고 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해져 세종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때는 이미 ‘황희가 죽었다’로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세종이 놀라 황희를 찾으니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김종서가 변방에서 홀로 지내는 바람에 온갖 소문이 떠돌지만 믿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이후로 세종은 김종서에 관한 어떠한 소문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김종서를 향한 무한 신뢰를 보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안다는 게 상대를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라고, 열 가지 자기 흠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결점에만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아무리 눈이 밝아도 제 코는 보지 못한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

묵묵히 1만 번의 연습을 이어가는 게 자신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자신을 완성했을 때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상대를 마주할 수 있는 배짱은 자신을 똑바로 볼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싸움에 나서겠다는 호기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강적을 마주하는 용기를 혼동하지 않는 게 싸움의 기본이다.

싸움의 시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못하면서도 실전에서는 잘할 수 있다고 위안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데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못했다고 이유를 달지 않으며, 훼방꾼만 없었으면 할 수 있었다는 핑계는 대지 않는 게 자신을 직시하는 방법이다.

“도둑놈은 한 죄, 도둑맞은 놈은 열 죄”라고 한다. 도둑놈의 죄는 물건 훔친 것 하나밖에 없지만, 도둑맞은 사람은 물건 제대로 간수 못한 죄에 쓸데없이 사람 의심한 죄 등 10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도둑을 탓할 일이 아니다. 도둑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이순신은 그 자신부터 활쏘기를 통해 단련을 거듭한다. 또 군부대 시설을 점검하는가 하면 바다에 쇠사슬을 걸어 적선에 대비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수군 최고의 돌격선인 거북선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마치 각본처럼 임진왜란 발발 사흘 전에 완성시킨다. 이순신은 홀로 적의 침입에 부지런히 대비한 것이다.

이길 수 없다면 지켜야 한다. 공격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이다(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불가승자 수야 가승자 공야). 힘이 모자랄 때는 지키고, 힘이 남을 때 공격한다는 뜻이다. 잘 지키는 자는 꽁무니도 안 보이게 땅속 깊이 숨고, 잘 공격하는 자는 그림자도 안 보이게 하늘 꼭대기에서 논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고 싸우면 모두 이길 수 있다.

진짜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쉽게 이길 만한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善戰者 勝於易勝者也 선전자 승어이승자야). 그래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이겨도 특별히 똑똑하다느니 용맹하다느니 하는 칭찬의 말도 못 듣는다. 그런 싸움은 손만 대면 이기도록 되어 있는 탓에 어김없이 이긴다. 승리란 이미 패배한 자를 상대로 거두는 것이다(勝已敗者也 승이패자야).

잘 싸우는 사람은 지지 않는 자리에 서서 적의 패배를 놓치지 않는다. 이기는 군대는 이겨놓고 싸움에 나서고, 지는 군대는 싸움부터 하고 승리를 찾는다(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시고승병선승이후구전 패병선전이후구승).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臧)는 자신의 병법서 《오륜서五輪書》 에서 이 세의 개념을 ‘박자’라는 말로 설명했다. “일을 하다 보면 벼슬하며 영달榮達하는 박자가 있는가 하면, 실각하는 박자도 있다. 하는 일마다 생각대로 되는 박자가 있는가 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 박자도 있다. 돈을 잘 벌어 부자가 되는 박자가 있는가 하면, 돈 다 잃고 파산하는 박자도 있다.” 이는 악기를 연주하자면 박자를 잘 타야 하듯이 싸움을 잘하자면 세를 잘 타라는 뜻이다.

《오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용감하다는 사람은 가벼이 싸움을 건다. 하지만 싸워서 실속이 없다(勇者必輕合 輕合而不知利용자필경합 경합이부지리).”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만 깨진다. 그런 싸움은 먹을 것 갖고 장난치는 짓밖에 안 된다. 이겨놓고 싸움에 나서야지, 덮어놓고 싸움부터 걸고 나서 이길 궁리를 하면 이미 늦는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가 다스려져 있으면 어지럽힐 수 없고(勢治者則不可亂세치자즉불가란) 세가 어지럽혀져 있으면 다스릴 수 없다(勢亂者則不可治세란자즉불가치).”

사실 손자가 제시하는 싸움의 기술은 간단하다. 내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게 전부다. 어떻게 하면 내 강점에 힘을 모으면서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거나 또는 만들어내느냐가 《손자병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손자는 큰 줄거리만 제시하고 세세한 작전은 설명하지 않았다. 변용하려면 끝도 없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유신의 첫 등장을 더욱 화려하게 빛내주기 위해서였을까. 신라군은 낭비성을 공격한 첫 전투에서 패배했다. 서전緖戰에서 지고 나면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신라군은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김유신이 “옛말에 ‘옷깃을 들면 옷이 발라지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 하니 제가 옷깃과 벼리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며 혼자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머리를 베어들고 돌아왔다. 신라 군사들은 이를 보고 힘을 내 적진을 들이쳐 5,000명의 목을 베고 1,000명을 사로잡았다.

김유신은 언제나 몸소 모범을 보였기에 부하들에게도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다. 감물성甘勿城에서 백제군과 싸움이 길어져 군대의 사기가 떨어지자 김유신은 비령자丕寧子를 은밀하게 불러 말했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용감히 싸우며 특출한 일을 이룩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겠는가.”

아군이 만만해 보이면 적은 덤빈다. 아군은 적에게 이런 착각을 심어줘야 한다. 마치 적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미녀와 금은보석을 잔뜩 얻을 수 있을 것처럼 해야 한다. 그래서 적이 미리 승리에 도취해 앞뒤 잴 것도 없이 달려들면, 아군은 자세를 잡고 있다가 일격에 제압해야 한다.

공격의 제2 요결은 ‘주동主動’이다. 싸움에서는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축구로 치자면 골은 넣지 못하더라도 공은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 공 점유율이 높으면 승률도 높은 법이다. 농구의 경우,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의 체력 소모는 비교가 안 된다. 똑같이 바삐 움직이기는 하지만 공을 몰고 다니는 공격자는 눈이 바쁘고, 공을 쫓아다니는 수비는 발이 바쁘다. 둘 다 뛰어다니지만 공격자는 여유로운 반면, 수비자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경기 진행 속도를 결정하는 건 공격자의 몫인 탓이다. 어떤 싸움이든 적을 끌고 다녀야 한다. 적에게 끌려 다니면 이미 진 싸움이다.

손자는 《손자병법》 을 펴자마자 나오는 〈시계〉 편에서 일찌감치 ‘전쟁은 속임수(兵者 詭道 병자 궤도)’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적을 끌어들이고 움직여 싸움의 주도권을 잡는 각론을 자세히 소개한다. 미끼로 적을 유인하기(利而誘之 이이유지), 혼란시키기(亂而取之 난이취지). 약 올리기(怒而撓之 노이요지), 비굴하게 굴기(卑而驕之 비이교지), 괴롭히기(佚而勞之 일이로지), 이간시키기(親而離之 친이리지) 같은 방법이다.

“난 늘 많은 군대로 적은 군대를 이겼다네.” 국소 우세주의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적군 5만과 아군 3만이 맞붙어서 승리했다면 적은 수로 많은 수를 이긴 게 맞지만, 개별 전투에서는 3만이라는 ‘집중’된 병력으로 각각 2만, 2만, 1만으로 나뉜 적을 한 번에 하나씩 차례대로 격파했기 때문에 많은 군대로 적은 군대를 이긴 셈이다. 그래서 국소 우세주의와 각개격파의 다른 이름은 ‘선택’과 ‘집중’이다. 잭 웰치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때는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했다. “세계 시장에서 현재 1위를 하고 있거나, 곧 1위를 할 수 있는 사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때려 치워라.”

정확히 말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뭔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무엇인가를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버리기에는 욕심이 너무 많다.

17 대 1의 전설 같은 싸움은 17명을 모두 때려잡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이길 수 없다. 1명만 패서, 나머지는 처절하게 깨진 1명을 보고 도망가게 해야 한다.

곽재우는 붉은 옷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 홍의장군이라는 뜻으로 ‘천강홍의장군’이라는 깃발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부하 10명에게도 똑같은 복장으로 전투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전장에는 10여 명의 홍의장군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상황이 연출됐다.

손자의 가르침과 두드러지는 차이는 ‘7할의 승산’이라는 부분이다. 손자는 ‘이기는 군대는 이겨놓고 싸움에 나가는 법’이라며 손만 대면 이길 수 있는 싸움, 즉 90퍼센트의 승률을 확보했을 때 싸움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손정의의 생각은 다르다. “너무 신중해도 승리의 기회를 놓친다. 9할의 승산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7할의 승산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에게 지고 만다. 9할의 승산을 노리는 사람은 작은 성공밖에 거머쥘 수 없다.”

《손자병법》 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한 손정의는 이 과정을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 정정략칠투頂情略七鬪’라는 10글자로 정리했다. “최고의 자리에 앉은 사람(一流)은 공수의 균형을 취하며(攻守), 무리를 지어 싸워야 한다(群). 정상에 올라서서 전체를 내려다보고(頂), 정보를 가능한 많이 모아(情) 전략을 세우고(略), 7할의 승산이 있을 때(七) 싸움을 벌인다(鬪).”

큰 이득을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안전을 중시하는 사람은 소소한 이득밖에 볼 수 없다. 스스로 사람을 고용해 월급을 주는 손정의와 오왕 합려에게 고용돼 월급을 받던 손자의 입장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