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7. 10:30ㆍ문장 수집
칭찬 기술을 달달 외운다고 그의 ‘말’이 바뀔까.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특성, 말하자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라온 환경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어쩌다 지금 같은 말하기 패턴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말’은 당신을 닮았다
편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의 경계’는 무너지기 쉽다. 감정과 말을 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기 때문에 여과 없이 말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생긴 말의 상처야말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어릴 때 부모님의 날카롭고 무심한 말에 아파했던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아이에게 그 패턴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후배의 아픔을 돌보기보다는 정신 차리게 하는 목적으로, 아이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보다는 잘못을 다그치는 수단으로, 친구의 고민을 보듬어주기보다는 한 수 가르쳐주려는 도구로 말을 사용하면 결국 사람은 다 떠나고 당신의 말만 초라하게 남는다.
관계는 ‘통제의 언어’로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들거나 강요하면 관계는 끊어진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말은 ‘통제의 말’이 아니다.
가까운 이들과의 불통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너무 자주 ‘진심’이라는 찬스를 꺼내든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진심이라는 말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진정성이 사라진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라고 생각한다. 말 그릇이 부족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리게 된다.
말로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기 전에, 말 그릇 속에 사람을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은 몇 초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우월감은 사실 내면에 숨어 있는 열등감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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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하고 차가웠던 부모님, 외로웠던 유년기, 경쟁자였던 형과의 관계를 풀어내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피하고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릇을 다듬은 사람은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전보다 편안해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역할도 기꺼이 해내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아들, 속상하지··· 지금 아들은 속상한 거야. 그러니까 화내지 않아도 돼.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하고 엄마에게 위로 받으면 되는 거예요, 알았죠?”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것이 속상함인지, 당황스러움인지, 슬픔인지, 놀람인지. 그 정체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낯선 상황,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반사적으로 아무 감정이나 골라잡아 내지른다.
엄마가 “뚝! 울지 마! 네가 조심하지 않고 어디서 울어!” 하고 다그치면 아이는 상황에 맞는 감정을 배울 수 없게 된다.
속상함, 상실감, 수치심과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들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걸맞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과 어울려 살지 못하면 자신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에도 서툴 수밖에 없다.
감정은 미묘하게 원래의 색을 바꾸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려면,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실망해서 화가 난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망과 화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실망이라고 생각하면 ‘너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함께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화라고 생각하면 ‘너 때문에 생긴 분노’만 남겨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인데, 화의 목적은 상대방을 물러서게 하고 웅크리게 만드는데 있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존중받아온 사람,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관계를 맺어본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위장된 감정들 사이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을 찾아낸다.
어떤 감정의 문을 여는가에 따라 그것과 닮은 말이 따라온다. 따라서 마음과 다른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진짜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감정을 절제하며 살았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진심을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먼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핵심 감정을 의식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익숙한 감정을 따라 결국 똑같은 대화를 반복하게 된다.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욱하며 반응하거나 ‘좋아 혹은 싫어’, ‘편안해 또는 불편해’로 감정을 이분화한다. 대화 중에 감정을 지각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3초 동안 진짜 감정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잠시 멈춤 질문’이라고 부른다.
감정은 ‘출현-자각-보유-표현-완결’이라는 다섯 개의 단계를 거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면 ‘다 네 탓이야!’라고 남을 원망하거나 반대로 ‘다 내 잘못이야.’ 하며 자책감으로 무너지기 쉽다
혹은 “무척 속이 상했어. 앞으로는 조심해주었으면 좋겠어.” 하고 깔끔하게 말하면 그만인데 그것을 못해서 “너 같으면 기분이 좋겠니?”라고 정도를 넘어선 말을 한다.
폭포수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평가할 때 ‘뒤끝이 없고 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의 감정까지 경계 없이 휘저으려는 사람들이다.
참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관계에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방은 사과할 기회나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죄인이 되어버린다. 감정은 담가두고 발효시키는 게 아니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을 딱 그만큼, 어울리는 양과 색으로 표현하는 일에는 언제나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말 안에 사람을 담아내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 주변에 잔소리하듯 되풀이하는 말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 참지 못하고 자꾸 끼어들게 되는 말, 예민하게 반응하고 발끈하게 되는 말, 잦은 의견 차이를 만드는 말은 무엇인가? 그 사이 어딘가에 당신의 공식이 숨어 있다.
타인의 말을 담는 그릇이 넉넉하려면 한 가지 공식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되 그것이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내게는 값진 보석이지만 타인에게는 발에 차이는 돌덩이가 될 수 있다는 것,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만 크고 작은 차이들을 조정하고 갈등을 통합해나갈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공식의 차이가 결국 ‘인간성과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과 공식’의 차이라는 것을 알면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보듬어주고, 다독이고, 위로하는 말보다는 지적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말에 익숙해졌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딸이,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엄마가 되기는 어렵다. ‘뭘 안다고 나서니!’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괜찮아, 너는 이대로도 좋아.’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는 힘들다. 환경에 적응하는 사이 말은 대를 이어 흘러가고 결국 그녀의 아이들도 강한 어머니 때문에 외로워졌다.
‘엄마의 짜증스러운 잔소리를 당해낼 사람은 없어. 정말 지겨워. 나는 절대로 저렇게 안 될 거야.’
‘엄마는 아빠보다 수건이 더 중요한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싶을 때, 혹은 아끼는 마음으로 돕고 싶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을 주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잊어버린다. 필요 이상의 일들을 하고, 경계를 침범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꼬집어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치밀하게 조언하고, 그것도 안 되면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 조개의 입을 더 꾹 다물게 만든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것들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가장 잘 어울린다. 봄날의 꽃도 그렇다.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물론 꽃이 늦게 피면 걱정하고, 만개했을 때 맘껏 기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 열릴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꽃봉오리뿐이다.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이 ‘기다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화 속에서 실천한다. 바로 ‘경청’하는 것이다. 듣는 실력이 있다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관계의 거리를 좁히고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것을 힘들어한다. 우리가 듣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말하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둘째, 듣기에 대한 오해 때문이거나 셋째, 듣기 실력이 부족하거나
잘 듣는다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동시에 상대방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도 파악해내는 것을 뜻한다.
회의시간에 상사가 한 말을 다시 팀원들끼리 해석하고 번역한다. 그러다 보니 오역이 쏟아진다.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을 한 사람의 의도와 뉘앙스가 전부 다른 법인데, 말한 사람 따로 있고 분석하는 사람 따로 있으니 당연히 소통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모르고, 상대방만 알고 있는 진짜가 있다.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면 자신의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고쳐주고 싶겠지만 고치려고 하지 말고, 간섭하고 싶겠지만 간섭하지 말자. 숨은 이야기까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불평하는 말을 고쳐주려고만 하면, 그 속에 숨은 ‘잘해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까지는 알아볼 수 없다. 답답하다고 앞뒤 재지 않고 간섭하려 들면 그 뒤에 숨어 있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알아볼 수 없다.
제대로 들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체력이 저하되어 있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듣기의 기술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집중이 어려워지니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럴 때는 마지못해 앉아 있는 것보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듣는 게 어렵다’고 양해를 구하는 게 더 낫다.
마음의 공명이 잘되려면 적당한 거리감이 확보되어야 한다.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니라, ‘너의 곁의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해결로만 접근하는 것은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거나 지나치게 가깝다는 뜻이다. 둘 다 부담스럽다.
“공감으로 들어줄 때는, 상대를 돕기 위해 문제해결 방안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전에, 상대방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문제해결에 너무 서두르게 되면 우리의 진정한 관심이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있다는 걸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공감을 지속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문제해결이 필요한 상황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다른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고,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말을 하는 사람도 상대방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회의와 미팅에서 서로의 위치에 상관없이 서로의 대화를 확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보자. 물론 윗사람이 먼저 제안하는 게 좋다. 이것이 문화로 정착되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줄어들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출입금지’ 말뚝을 세워 놓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감정들을 해소하려면 감정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 길을 새롭게 내줘야 한다.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로의 방향을 틀어줘야 한다.
‘질문’이야말로 그러한 본질에 가장 적합한 말하기 기술이다. 이 기술은 효율적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값진 대화를 경험하게 한다. 게다가 창조적이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에 따라 대화의 방향이 달라지고, 말하는 사람이 숨겨둔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적이다. 질문하는 사람과 질문받는 사람의 관계가 보다 더 특별해진다. 질문하고 답을 하고, 또다시 질문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질문은 화살표가 있기 때문에 조준점이 명확하다. 질문을 받으면 일단 그 질문에 걸리고 만다.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다. 좋은 질문일수록 머릿속에서 맴돈다.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어수선하게 널려 있던 고민들이 정리되고 생각이 말끔해진다. 질문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생각이 뚜렷해지고 마음이 시원해진다.
누군가가 내 의지나 의견을 꺾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청개구리가 된다. 그 고집에 사로잡혀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아직 남아 있던 다른 쪽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진심 어린 질문에는 심술을 거두고 되묻게 된다.
질문의 유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있지만, 성장을 돕기 위한 질문들도 있다. 의심을 풀어내기 위한 질문들도 있지만,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질문들도 있다. 또 과거를 추궁하는 질문도 있지만 미래를 탐색하는 질문도 있다. 어떤 질문이 더 좋고 나쁜가는 요리사와 조리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리된 질문을 제대로 사용하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질문들은 월척을 낚을 확률이 높다
내게는 만나면 힐링이 되는 사람이 있다. 상대를 보며 내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위안 삼지도 않게 되는 온전히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 그래서 빡빡한 내 삶에 용기를 주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잡게 해주는 사람 특별히 내게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는데도 그냥 수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친구의 마음이 담긴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생각했다.
주의 깊게 듣고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굳이 힘내라고, 근사한 말을 보태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첫 마음이 있다. 잘해보고 싶은 기대가 있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열망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을, 나도 꽤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친구에게 관심 어린 질문을 던져보자. “지난번에 준비하고 있다는 일은 잘되고 있어?” “요즘 제일 살맛 나는 일은 뭐야?”
배우자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언제 자신이 근사해 보여?” “당신, 아이들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다. “너, 이번에 시험목표 달성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혼자 힘으로 해내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줄까?” 질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을 갖는다.
작은 설렘이나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질문이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 과거에 잘했던 것, 앞으로 바라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게 질문을 던져보자.
어린아이들은 놀 때 주도권과 자율성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이와 제대로 놀아준다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개척하도록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결국 아이는 놀이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질문은 바로 자율성의 대화법이다. 끌고 오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스스로 걸어오게 하는 방식이다. 질문을 통해 과정과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상대방을 참여시킬 수 있고, 방법과 프로세스에 관해 질문함으로써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
말은 출처가 중요하다. 누가 말을 했는가에 따라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결정된다.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대답하기 위해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참여하면 책임감이 생기고, 책임감이 높아지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이 선순환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성장한다.
보고할 때 : 선배가 후배에게 질문해주세요. Q. 보고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목적) Q.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황분석) Q. 보고서의 결과물을 스스로 만족스럽기 여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가능성발견) Q. 보고 이후 서로(선배와 후배)가 무엇을 확인하면 될까요? (사후진행) 회의할 때 :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해주세요. Q. 회의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결과물은 무엇인가요? (목적) Q. 좀 더 효과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방법) Q.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가 서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확인) Q. 우리가 오늘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어떻게 결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사후진행) 업무할 때 : 업무 중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주세요. Q. 오늘 하루,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배분했나요? (우선순위) Q.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와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요? (가치) Q. 지금 하는 업무를 최상의 결과로 만들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탁월) Q.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
장) 보고할 때, 회의할 때, 혼자 일을 할 때로 질문 상황을 나누고 선배가 후배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 리스트를 위와 같이 만들었다.
‘질문문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에 대해서 묻자, 사람들은 질문을 통해서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몇몇 사람이 회의를 주도하던 예전과 달리, 질문을 함으로써 대화의 비중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되었다고.
질문은 정해진 방향이 있는 게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동료끼리 혹은 선배에게도 질문은 분명 학습의 기회가 된다. 그것은 좋은 자극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방어나 권위의식 등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말이다. ‘선배니까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상사에게 먼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목표별로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인가, 그 이유는? 서로에게 고마웠던 일은? 미안했던 일은? 내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가족의 가치는 무엇인가? 당신의 내년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 어떻게 서로 도와줄 것인가? 성공하면 어떻게 축하할 것인가?
서로의 생각을 꺼내어 정리하고 기록해두면 이전과는 다른 연대의식이 생긴다. 누구 한 사람이 악역을 도맡지 않아도, ‘왜 노력하지 않느냐’며 원망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욕을 채울 수 있다. 우리가 얼마만큼 왔는지 돌아보고, 또 얼마나 갈 수 있는지 묻고 말하는 사이 부부의 협력체계가 풀가동된다. 그 힘으로 가족은 또 한 해를 달린다.
함께 멀리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깊게 참여시키고, 공을 들여 키워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질문만큼 귀한 기술도 없다.
질문은 평생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하기 기술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바로 ‘당장 써먹지 말 것, 결과를 바로 기대하지 말 것’이다.
문제는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얼마 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답해주실 때까지 믿고 기다릴게요.”
“아! 역시!! 중요한 포인트에 말씀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해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답이 기대한 것이 아니거나 흐름을 깨는 답이라고 해도 ‘입을 열어 대답해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을 아낌없이 인정해주면 다른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떤 답을 해도 안전한 거구나.’ 정답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 그 어떤 답도 비난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다음 사람도 용기를 낸다.
첫째, 질문하고 나면 반드시 기다릴 것. 절대로 먼저 답하지 말 것. 둘째, 답의 수준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인정할 것 셋째, 답변을 살리는 피드백을 추가할 것(아주 간단히)
“쉬운 질문이 아닌데 말해줘서 고마워.”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되었어.”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네.”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어.”
좋은 질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질문으로는 사람을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책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을 보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질문을 자주 하는가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에 따라서 ‘학습자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심판자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고.
학습자의 길로 이끄는 질문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뭘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뭘까? 이 일에서 유익한 것은 뭘까? 내가 배울 점은 뭘까? 어떤 일이 가능할까?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상대는 다른 생각의 갈래를 선택하게 되고 그것이 기분과 행동을 좌우한다. 자녀들에게 방어와 변명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자율과 확장을 이끄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동료들에게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질문을 할 수도 있고, 고통스럽지만 성장하게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만약 네가 프로젝트를 이끈다면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할까?
하지만 ‘질문하기’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그동안 좋은 피드백을 받았던 질문들을 소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OFTEN 질문법’이라고 부른다.
열린 질문이란, 질문 받는 사람이 풍성한 생각과 의견을 꺼낼 수 있도록 설계된 질문을 말한다. 즉 많이 말하고 길게 떠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떠돌던 말을 마음껏 꺼낼 수 있도록 잘 다듬어서 질문하는 게 좋다.
가설 질문이란, 현재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다.
목표지향 질문은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예상하게 되는 가능성과 기대에 대하여 묻는다. 목표 자체가 버거울 수 있고, 시장 환경과 내부 시스템이 열악하고, 협력 과정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지만 목표지향 질문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감정 질문이란, 사람의 마음과 심정에 초점을 맞추는 질문이다.
중립적 질문이란, 생각과 의도를 담지 않은 질문을 말한다. 순수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질문으로 깔끔하고 담백하다
기본적으로 질문은 상대방을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생각의 환기를 돕는다. 그러나 질문하면서 주도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면 상대방은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질문을 만나면 생각이나 감정, 본심은 다시 저 깊은 곳으로 쏘옥 들어가 버리고 만다.
질문은 사람을 향한 호기심을 토양으로 한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말에 더 관심을 두는 유도질문은 상대방이 진짜 생각을 꺼낼 수 없게 만들 뿐 아니라, 질문에 대한 거부감과 상대방에 대한 불쾌함을 증폭시킨다.
말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서로가 자신의 말만 하느라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 중립적인 질문을 던져 대화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질문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열린 질문의 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니? 지금 네가 확실하게 내린 결론은 뭐지? 가설 질문의 예 만약 5년 후에 지금의 너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만약 네가 지금 포기한다면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친한 후배가 같은 일로 고민한다면 너는 뭐라고 조언해주고 싶니? 만약 심리적인 압박감이 없다면 무엇을 시도해보고 싶어? 목표지향 질문의 예 네가 이런 고민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감정 질문의 예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 가장 기대되는 것과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어떤 거야? 중립적 질문의 예 현재 결정을 내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지? 더 확인해야 할 사실들은 무엇이지?
좋은 질문에는 깊이가 있다.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풍성한 스토리를 끌어올린다. 좋은 질문은 예리하다. 상대방이 놓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상기시킨다. 강력한 질문들은 간결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덧붙이지 않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고, 균형이 잡혀 있다.
질문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질문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가장 좋은 질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질문은 정성어린 경청이 만든다. 날카로운 질문 한 방으로 깨달음을 주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질문을 챙기다 사람을 놓친다. 먼저 대화로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충분히 듣고 격려하면서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것부터 피해야 한다. 늙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 중에는 말하기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도 포함된다. (중략) 젊은 사람들 앞일수록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그 조심성은 존중의 수준으로까지 격상될 필요가 있다. 나이든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과격하거나 불경스러운 말 한마디는 반듯한 사고를 갖춘 젊은이의 빈축을 살 뿐이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도 넘치는 말을 조절하지 못해 그 진가가 묻힐 때가 있다. 그 흐름을 바꾸려면 인내와 수양의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순간에 침묵하고, 경청하고,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말하기 기술인 셈이다.
침묵, 경청, 질문
모든 사람들이 말을 대단히 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가 쏟아내는 말들이 제대로 숙성되어 있는지 점검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대화의 연속성 - 마침표의 원리’로 설명한다. 순환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맞물려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원망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가까운 관계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신호등 없는 교차로와 같다. 잠깐 멈추라는 ‘빨간불’도, 조심해달라는 ‘노란불’도 없기 때문에 서로가 무심하게 선을 넘는다. 그래놓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나오냐?”며 화를 내거나 “너는 어째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어른의 대화란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보하면서 선을 지키는 것,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절반의 책임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책임감(Responsibility)은 ‘Response+ability’의 조합으로 탄생한 말이다. 즉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대화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내가 넉넉한 말 그릇을 지녔다면 대화하기에 어려운 상대방을 만나도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 대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실제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대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관계를 바라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잘못을 따지는 입씨름에서 벗어나, 말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따라 다른 통로를 발견한다. 말에 매몰되지 않고 더 높은 관점에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대상을 탓하지 않는다. 버거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따뜻한 배려를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말을 두루뭉술하게 한다. 마음과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 다루기를 어려워하고, 타인의 감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애매하게 말하고, 돌려 말한다. 특정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과도하게 부풀리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진 관점을 가지기 쉽다.
자신을 껴안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지속되기 어렵다. 자신만으로 충분치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또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말과 행동을 결정하지만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때로는 오히려 사람을 교묘하게 조정하거나 이용하려고 든다.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격려하는 연습이 안 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기란 어렵다.
‘너 그동안 힘들었지. 잘 견뎌 왔어. 후회와 실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의 모습인걸.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하고 자신을 다독일 줄 알고, 그 힘으로 또 다른 고비를 넘기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말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을수록 그가 ‘지금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좋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방은 자신을 건드리는 무엇인가를 의식하느라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때로는 “불편해 보이는데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도 좋다. 상대방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로 그를 누르려 하다가는 강한 방어시스템이 당신을 튕겨내 버릴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반복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된다. 따라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누군가를 비판하려 들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인격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노력,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충돌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부부 다시 사랑하다』의 저자이자 상담치료사인 린다 캐럴(Linda Carroll)은 인간에게 필요한 두 가지의 영혼을 두고 “결합에 능한 영혼”과 “거리두기에 능한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삶이란 이 두 개의 영혼을 보살피면서 함께 가는 여행이다.
경계선이 명확한 관계는 개별성과 연합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혼자도 좋고, 둘도 좋다. 타인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면서도 감정을 짊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주려고 애쓰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안다.
“누구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이 법칙은 누군가를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어떤 마음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너를 위한 거야.’라면서 바닥까지 퍼주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너무 빨리 지쳐버린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속상하다는 말만 쏟아낸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놓고 기대할 것이 없다며 너무 빨리 돌아서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다가서는데 상대가 물러선다고 속상해하지 말자. 가장 최적의 위치를 지켜야 서로가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것을 존중해야 손을 놓지 않고 멀리갈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 회의시간에, 점심시간에,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당신은 생존을 위한 말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협력을 위한 말을 선택하는가. 당신이 던진 말에 상대방은 불안해하는가 아니면 안도하는가.
사람들 중에도 ‘씨름의 관계’를 맺는 이가 있고, ‘왈츠의 관계’를 맺는 이가 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고, 경쟁보다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여전히 본래의 순수함이 남아 있다. 단지 삶의 고통을 겪으면서 흐려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그 여성이 보여주었던 그 용기와 유연함을 내 곁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된다. ‘회사 다니기 힘들다’는 남편에게 ‘당신의 수고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면 되고, 성적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괜찮아.’ 하며 다독일 수 있을 정도의 유연함이면 족하다.
그러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와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말 대신 진짜 나다운 말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말을 비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와 내 감정과 마음을 더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자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연스러워지고 생각에 유연함이 생겼다. 예전처럼 과장하는 대신 내게 어울리는 편안한 말을 갖게 되었다.
“아들, 엄마는 네가 장난칠 때도 변함없이 사랑해.”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엄마, 고마워.”
요즘에는 그런 마음으로 말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어릴 적의 나는 ‘자라게 하는 말’을 많이 듣지 못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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