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7. 14:11ㆍ문장 수집
조직이 조직의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위에 앉은 자의 책임이다.
지시 한마디로 그 사람의 위기관리 수준이 모두 드러나 버린다. 무서운 일이다.
조직이 병들게 되는 것은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허물없는 매너리즘이 만연한 순간부터다. ‘이 정도만 하면 충분할 테지 뭐’ ‘자네도 그러지 않았나?’와 같은 일이 지속되면, 부하는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고 힘을 아끼게 되고 만다. 그것이 버릇이 되고 습성이 되어 버리면 그 부하는 비참해진다.
리더가 가르쳐야 할 것은 ‘가치관’이다. 기술이나 노하우는 리더 이상으로 뛰어난 인재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리더는 안심해도 된다. 어느 시대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라면 호령으로, 마편으로 갈 수 있는 거리라면 명령을 내려서, 그리고 그 범위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면 훈령으로 지시한다.
그러므로 명군은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거나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짜내거나 하지 않고, 모든 신하들이 본분을 알고 처신할 바를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능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모두 부하 자신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스스로 그 정답을 깨닫도록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군주가 좋고 싫은 기색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신하는 본래 자기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군주가 지혜와 기교를 버리고 대하면 신하는 자기 스스로 준비하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약에 평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인재를 발탁하면, 신하는 군주를 떠나 자기들끼리만 친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패거리를 만들어 관인으로 등용되면, 백성은 세도가와의 교제에만 신경을 쓰고 정해진 국법에 따라 관직에 등용될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평판이 좋다 하여 상을 주고 평판이 나쁘다 해서 벌을 주면, 상을 바라고 벌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공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멋대로 술수를 부리며 서로 감싸 주게 됩니다.
예를 들면 형벌과 덕이라고 하는 극히 효과적인 무기는 군주만이 써야 하는 것으로 가신에게 사용하게 해선 안 된다고 한다. 왜 가신이 사용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인가?
요컨대, 그 공이나 고마움이 모두 군주에게 돌아가지 않고 중신의 은혜로 되어 버린다.
시대가 이토록 첨단으로 바뀐 요즘에도 어떤 회사에서는 매월 사원들이 사장실 앞에 마치 염주처럼 죽들 늘어서서 대기한다. 한 사람씩 사장으로부터 한 말씀 듣고 나서 명세서를 받아 쥔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건투하고 있는 사원에게는 감사의 기분을 표하고, 노력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각성하도록 만드는 기회가 된다. 이런 의사소통 과정을 담당 직원에게 맡겨 두지 않고 사장 자신이 직접 하는 행위는 실은 사원과의 관계를 강화시켜 준다.
부물자유소의 재자유소시
닭에게는 날 밝는 것을 알리게 하고, 고양이에겐 쥐를 잡게 하면 모두 그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므로 군주로서는 만사가 잘 이루어지게 됩니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자기보다 유능한 사람을 쓴 자, 여기 잠들다.
그러나 현자라 함은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물에는 의당 있어야 할 적소가 있고, 재능 역시 의당히 써야 할 적소가 있다. 이들 각각을 적재적소에 두면 군주와 신하는 달리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충의(忠義)에 얽매이는 것은 큰 충의의 적(賊)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변하기 쉬운 것은 없다. 그런 만큼 자신의 자리가 확실히 정착될 때까지는 상대를 자극해선 안 된다.
사장과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커뮤니케이션을 밀접히 해야 한다. 자종크(Zajonc)라는 폴란드 출신 미국의 심리학자는 유명한 ‘단순노출효과(단순 접촉의 원리)’를 발표했는데, 이는 상대의 신상 같은 것을 전혀 모른 채 단순하게 얼굴을 몇 번 마주쳤는가 하는 횟수만으로 호감도를 대조 비교한 것이다.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번 본 사람보다 두 번, 두 번 보다는 세 번 등으로 얼굴을 마주친 횟수가 늘면 늘수록 호감도가 늘어난다고 한다.
‘길흉화복은 꼰 새끼줄과 같다’고 한다. 행불행은 동전의 양면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숨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행복하다고 떠들어 대고 다녀선 안 된다. 길흉화복은 사람의 지혜와는 상관없이 닥쳐오는 것이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일뿐이다.
의식은 자신과 미래를 간단히 바꿔 버릴 정도로 강하다. 어쩌면 운명까지도 바꿔 버릴 만큼의 파워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의식만큼은 항상 긍정적으로 깨어 있도록 해야 한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미혹에 빠진 탓’이다 망설이지 말고 가라, 행하면 이루어지리라
게다가 지금처럼 디플레이션 상황이라면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만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앞서서 뛰쳐나가는 창업자만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요컨대 두 번째 이후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 승패 반반의 상태에서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6대 4의 상태에서 시작할 것인지 하는 것은 각자 마음먹기 달린 일이지만, 어느 경우라도 100% 승부의 향방을 알게 된 단계에서 참가한다면 이미 늦어 효과가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니 만큼 5부 혹은 6부의 단계에서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거기에 경영자의 모든 역량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아직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은 이렇게 된다, 이렇게 하자 하면서 그림을 그려 간다. 그리고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든다. 목적을 달성한다는 확신을 지속해서 갖고 간다. 이것을 집념이라고 한다.
함부로 뒤집어 대지 말라 큰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는 믿어야 할 세 가지 이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혜만 가지고는 성사시킬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힘만 가지고는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강한 것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닭이 아침이 왔음을 알리고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부하 개개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이끌 수 있으면 지도자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 지도자가 직접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도 부하의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일을 원활하게 진행시킬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회사에 있으면 사내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상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면 긴장감이 결여되고 그 결과, 실적 부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원을 너무 감시해도 안 좋지만 너무 풀어놓아도 좋지 않은 것이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 그대로이다. 다 알다시피 이것은 『회남자(淮南子)』에 나와 있는 점을 잘 치는 노인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국경 부근에 살고 있던 노인의 말이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이 모두 노인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해 주었다. “참 안됐습니다. 속상하시겠어요.” “아니오, 이것이 오히려 복을 불러올지도 모르지요.” 수개월 후 노인의 말대로 도망갔던 말이 다른 준마까지 거느리고 되돌아왔다. 주위 사람들이 또다시 말했다. “잘됐네요. 좋으시겠어요.” “아니죠, 이게 오히려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노인의 집에는 점점 명마가 늘어나게 되었으나 노인의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멋진 말들이 늘어나면서 노인의 아들은 승마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 노인이 예측한 대로 아들은 말에서 떨어져 다리뼈가 부러져 버렸다. “저런, 불쌍하게도 참 안됐습니다.” “아니지요. 어쩌면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지요.” 역시나 마을 사람들과 노인의 대답은 달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터로 나간 젊은이들의 십중팔구는 전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졌었기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아 무사히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날 그리고 지금 현재, 실패를 했던 성공을 했던 간에, 그것과 앞으로의 장래와는 본질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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